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계시를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시대에 ‘맞는’ 해석과 시대에 ‘맞춘’ 해석 사이의 간격이 때로는 애매해서 신학이 오염되거나 왜곡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본고에서는 범재신론과 ‘깊은 육화’ 이론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자 한다. 우선 범재신론과 이에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과정 철학에 관해 다룬다. 이후 환경신학 일부에서 주장하는 ‘깊은 육화’와 이와 관련된 범심론적 경향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이 지닌 역사성과 인격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학의 그리스도론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범재신론은 ‘세상 만물이 곧 신’ 이라는 범신론과 달리 ‘모든 것(pan) 안에(en) 신(Theos)이 있다’ 내지 ‘모든 것이 신 안에 있다’를 주장하는 이론이다. 범재신론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초월해 존재하시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다고 단언한다. 범재신론에서 신은 초월적 존재지만, 근본적으로 우주의 내재적 원리와 법칙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깊은 육화’란 기존의 전통적인 육화 개념을 오늘날에 맞게 해석한 개념인데, 육화 개념을 인간 구원과 관련된 개념으로만 해석해 온 기존의 그리스도론을 넘어 우주 전체의 모든 피조물과 연결한다. 범재신론이나 깊은 육화 이론의 문제는 신학을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에 있다. 곧 초자연적 계시에 대한 의존이 적고, 자연적 계시에 집중하기에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중심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물리적 차원에서 하느님과 세상을 해석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깊은 육화’ 이론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육화는 하느님이 물질이 되시고 피조물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 자신이 직접 시간과 역사 안으로 인간에게 다가왔다고 선포한다. 육화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은 스스로 영원한 분이신 하느님의 역사가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적’ 전망 안에서 역사적 예수는 하느님의 결정적 계시이고,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우주 만물의 구원자이며 육화된 진리이다. 내재적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성자의 현존은 역사 안에서 인격적으로 구현되었다. 말씀의 육화 안에서, 공생활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진리는 인격적으로 구체화된다.